좋은 제품은 빼기의 결과이다

웹과 모바일 2010.03.05 18:22
유정식 님의 포스트 '아이팟은 어떻게 아이리버를 이겼나'의 한 대목.

타업체들은 뛰어난 부가기능을 부각시켰습니다. 음악재생 이외에 보이스 레코딩, 동영상 재생, 게임, 인터넷 접속 등의 부가기능을 결합한 제품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그래서 MP3 플레이어라기 보다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나 PDA에 가까운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애플의 아이팟은 기본기능인 음악재생만 충실히 하고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가기능을 과감히 삭제했지요. 아이팟 셔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 문장과 이어지는 맥락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완전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나같은 웹기획자가 프로젝트를 할 때 어려움을 겪는 때는 강력한 기능이나 서비스를 만들려고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자잘한 편의 기능 -혹은 고객이 좋아하는 기능이나 고객이 좋아하는 사이트에서 적용한 기능- 을 추가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걸 조율하는 때다. 고객이 요청하는 기능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는 문제이고, 기획자의 판단으로는 수용할 경우 장점은 고사하고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기능도 있다. 이럴 때, 사실은 진짜 웹기획자의 능력이 드러난다. 뭐? 고객 설득.

웹기획자의 업무는 사실 8할이 설득이다. 고객을 설득하고, 디자이너를 설득하고, 개발자를 설득한다. 아울러 PM 혹은 본사 임원도 설득해야 할 때도 많다. 물론 가장 설득이 어려운 대상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고객이다. 뭐니 뭐니해도 돈을 주는 사람이니까. 광고업계에서는 '(광고)주님'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객을 설득할 때 '이 기능을 적용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거나, '이건 이래서 불가능하다'고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기능은 설득이 쉽다. 문제를 감수하고 기능을 적용하거나, 기술적 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니 빼면 되니까 당연히 쉽다. 진짜 문제는 예상되는 뚜렷한 문제도 없고, 구현이 불가능하지 않은 기능이다. 이럴 땐 두 가지 선택안이 있다. 어떻게든 설득하려 애쓰거나 그냥 원하는대로 하거나.

이 기능을 추가하면 특별한 장점이나 이득은 생기지 않을 것 같으나, 손해도 없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기획자의 의견대로 쉽게 제외해 주는 고객은 -내 경험상- 없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뭐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고객의 판단에는 이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이용자(즉 고객의 고객)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근데 요즘 들어 의문이 든다. 정말로 그래서일까?

혹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닐까. 고객은 프로젝트를 발주했고, 제작회사를 선정해서 계약도 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통상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이왕 지불하기로 한 비용에서 추가 비용을 내는 경우는 없다. 물론 '통상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것도 참 탄력성 좋은 고무줄이긴 하다만. 그렇다면, 하나라도 더 기능을 집어넣는 것이 고객의 입장에선 이득이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이왕 낼 돈은 정해졌으니, 물건을 하나라도 더 받아오는 게 이득이 아니겠냐 이 말이다. 이 경우엔 그 물건이 바로 기능이고. 딱히 이득이 없는 기능을 굳이 집어넣고자 하는 이유는 왠지 이걸 빼면 물건을 하나 덜 가져오는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이유가 어쨌든 간에,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어떤 이득이 있는가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집어넣은 자잘한 기능들은 결국 결과물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이렇게 추가된 기능들이 결국 복잡성을 불러오고, 복잡성은 사용자를 당황하게 만들어 사용성을 떨어뜨린다. 이 얘기를 무조건 '모든 제품'으로 확대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분명 제품을 구입할 때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갖고 있느냐도 구입 기준 중 하나니까. 설령 사고 난 뒤에 절대로 쓰지 않을 기능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적어도 웹사이트를 포함한 소프트웨어에 있어서는 많은 기능이 결코 좋은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개의 경우 불쾌한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분들 중 나처럼 을의 입장이 아니라 갑의 입장인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완성도 높은 제품은 결코 더하기를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제품 중에 정말 좋은 제품이 있다면, 이 제품이 가진 기능 30가지가 제품을 만들 때 생각해낸 100가지 기능 중 70가지를 빼고 남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 생각해낸 10가지 기능에서 20가지를 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