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의 전원 케이블에서 발견한 애플의 섬세함

기타등등 2010.09.24 17:27
'애플'이라는 기업명을 들으면 디자인, 완결성, 세련됨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스티브 잡스'이지만 말이다. ('애플=스티브 잡스'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스티브 잡스 사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강하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선가 잡스의 후계자는 '조나단 아이브'라는 말을 봤는데, 그럴지도.) 매킨토시(G3)를 처음 접했을 때도 그 미려한 디자인과 나사 하나 바깥으로 돌출되지 않은 세심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옆면 손잡이를 잡아 열면 본체 옆면이 부드럽게 열리던 것도 인상적이었고. 하지만 어떻게 잡아도 불편한데다 스크롤 휠도 없는 원반 형태의 마우스는 아무리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맥북 에어와 함께 사용하는 매직 마우스도 터치로 작동하는 편의성을 제외하면 마우스 자체의 디자인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같은 회사의 여직원은 이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만) 마우스는 거의 하루 종일 손으로 잡고 움직여야 하는 제품임을 감안하면 적당한 부피감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손으로 쥐기 편하다), 적당한 무게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써본 최고의 마우스는 여전히 로지텍 제품이다. (로지텍은 꿋꿋이 양손 마우스를 고집하는 또 하나의 하드웨어 명가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리 한 손에 특화된 디자인의 마우스도 곧잘 만든다. 오른손잡이용 마우스의 손에 착 감기는 그 각도는 정말 일품이다) 그에 반해 매직 마우스는 너무 얇다. 덕분에 청바지 앞주머니에도 쏙 들어가지만, 나처럼 손이 작은 사람도 마우스를 의식적으로 '쥐고' 움직여야 한다. 마우스 위에 손을 '얹는' 느낌이 드는 로지텍 제품과는 다른 철학으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본다.

그러나 맥북 에어를 몇 주 동안 사용해보니 애플의 섬세한 디자인에 놀라는 때가 종종 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얘기하려 한다. 바로 노트북의 디자인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전원 케이블에 대한 얘기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의 전원 케이블은 두 개로 구성된다. 노트북 쪽에서 연결하는 케이블과, 전원 콘센트 쪽에서 연결하는 케이블이 있고 그 가운데에 묵직한 덩어리(?)가 있고, 이 둘은 분리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덕에 본체 무게가 1,100그램에 불과한 넷북도 이 전원 케이블이 합쳐지면 대충 300~400그램은 추가된다. 무게 뿐만 아니라 전원 콘센트가 가까이 있는 경우엔 '남는 케이블'을 처리하기도 애매하다. 애플은 이 불편함을 간단히 해결했다. 어떻게? 전원 케이블을  '기본+확장'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맥북 전원 케이블 이미지1
맥북 전원 케이블 이미지2


전원 콘센트가 가까이 있는 경우라면 첫 번째 사진처럼 기본 케이블만 연결하면 된다. 기본 전원 케이블의 길이는 대략 1미터 정도 되는데, 그래도 케이블이 남는다면 두 번째 사진처럼 플러그에 남는 케이블을 감아서 정리할 수 있다. 다른 노트북 전원 케이블보다 충전에 필요한 시간이 긴 편인데, 그 대신 훨씬 가볍다. 내 경우엔 대부분 외부 전원이 있는 곳에서 업무를 하니 이 편이 훨씬 편하다. 만약 전원이 멀리 있어 케이블이 길어야 한다면? 세 번째 사진처럼 확장 케이블을 사용하면 된다. 플러그의 앞 부분을 분리해서 그 곳에 확장 케이블을 연결하면 일반적인 노트북의 전원 케이블 정도의 길이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엔 전원 케이블을 가방에 넣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원 케이블은 굵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잘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해서 대개는 대충 말아서(혹은 접어서) 가방 한귀퉁이에 쑤셔넣는다. 성격이 깔끔한 사람이라면 이런 케이블을 정리하는 용도의 밴드(밸크로가 부착되어 돌돌 말린 케이블을 묶어주는)를 사용해서 정리를 한다. 그렇다면 맥북은?


처음 맥북 포장을 뜯은 날, 케이블에 조그맣게 달려있는 고리(?)의 용도가 뭔지 몰랐다. 케이블 끄트머리가 동그랗게 말려 그 고리에 꽂혀있긴 한데, 머리가 나쁜 탓인지 그걸로도 이게 왜 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전원 케이블을 가방에 넣어 바깥으로 나갈 때가 되서야 드디어 용도를 알아냈다. 전원 플러그에 케이블을 돌돌 만 다음, 그 끝 부분을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고리였다. 앉으면 눕고 싶다고, 확장 케이블도 정리할 수 있는 도구를 좀 추가해주지 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냥 케이블 밴드로 감아서 정리한다.

애플의 제품을 써보면 그들의 디자인 철학이 전해져 온다. 사용자들이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때 어떤 식으로 하는가, 일반적으로 그들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환경에서의 외부 전원과 노트북과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 외부 전원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케이블을 어떻게 하나, 가방에 담을 때는 어떻게 하나, 이렇게 세심한 관찰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만난 예전 동료(개발자)도 대화 중에 '기능을 설계하면 그걸 예쁘게, 보기 좋게 만드는 게 디자인인데 그게 안된다'며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디자인을 대하면 안된다. 디자인은 무언가를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높이는 것이 목적-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이라는 걸 잊으면 안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보기 좋게 만들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먹기 좋은 떡을 만드려면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는 뜻이다. 애플은 (비록 때로는 좀 의아할 때가 있지만) 이걸 너무 정확히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