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통과 UI 기획 세미나

웹과 모바일 2011.01.19 15:01
작년에 열린 UX 세미나에서 도널드 노먼 옹이 강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외형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장치가 반드시 사용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단순해 보이는 장치가 사용성이 쉬운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이미지를 꺼내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양념통 사진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Wyrmworld

(위 사진은 물론 노먼 옹이 보여준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위 사진처럼 생긴 양념통 사진을 보여주며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두 양념통에는 소금과 후추가 들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소금을 넣은 걸까요? 왼쪽이 소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이 질문은 물론 아무 의미가 없다. 왼쪽 것이 소금일수도 있고, 후추일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알 수 없다. 뚜껑이라도 달린 거면 뚜껑을 열어 확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뿌려보기 전엔 모른다. 설령 열어서 확인한다 해도 소금과 설탕이라면 맛을 보기 전엔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제품은 사용하기 쉬운가, 그렇지 않은가.

특정 제조사에서 나름의 규칙을 부여할 수 있다. 후추는 구멍을 여러 개 만들고 소금은 구멍을 하나만 만들겠다고.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물어보자. 여러분은 그 구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세계 양념통 제조업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기업이 이런 제안을 해서 그 제안이 사실상 표준으로 굳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아주 아주 단순한 형태, 단순한 디자인을 제시하는 것이 반드시 사용성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용성은 제품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쌓아온 역사와 사회적 맥락까지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병이 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단순하게 생긴 병따개를 만들었다 한들 사용성이 좋을리가 없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담은 물건이라면 단순성 여부를 떠나 '개념 정립' 자체가 되지 않은 단계니까. 트위터만 하더라도 처음엔 '140자를 적을 수 있는 입력기능'만 제시했을 뿐일테지만 그걸 접한 사람들은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고' 했을 테니 말이지.

그날 노먼 옹의 양념통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린 생각 하나. 앞으로 혹시 회사에서 워크샵을 가게 되면 저걸 해야겠구나. 외부에 라벨을 붙이지 않고도 후추, 설탕, 소금, 고춧가루를 구별할 수 있는 양념통을 디자인해보는 거다. 완벽한 양념통이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양념통이 세상에 등장한게 몇 년인데 아직도 안나오지 않았나?) 참가자들에게 사용성과 UI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로는 훌륭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