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웹과 모바일 2011.02.14 18:01
최근에 고정관념을 바꿔보자는 내용의 포스트(1박2일 은지원이 보여준 역발상)를 올렸다. 음. 뭐 최근이라기보단 바로 이전 포스트다. 이번 포스트는 바로 이전 포스트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고정관념이 과연 나쁜 건가, 하는 문제다. 아니 나쁘다기보단 고정관념은 꼭 극복해야할 대상인가 하는 문제다.

많은 책의 저자들이, 혹은 많은 강연에서 강연자들이 우리에게 '고정관념을 극복하라'고 말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성공한 사례나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혹은 고정관념을 극복한 뛰어난 제품, 정확히는 대박을 친 제품을 예로 들면서. 이런 책이나 강연자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래 그래, 난 너무 고정관념에 젖어 있었어' 하고 반성 모드로 들어간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혹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그간 고정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론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려볼테다 결심도 한다. (하나? 나만 그런가?) 그러나 불행히도 나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바로 다음날부터 직장에 출근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생활로 빠르게 적응한다. 늘 해오던 방식으로 일하고, 해오던 방식대로 생각한다. 우리는 구제불능일까?

결론을 내리기 전에 고정관념이 무슨 뜻인지부터 말해보자. 고정관념은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 하여간 내가 인지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일정한 판단, 사고, 행동 패턴을 말한다. (사전을 검색한 게 아니다. 이런 '정의'를 쓰면 꼭 사전을 검색해서 거기 나오는 말을 복사해서 붙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자.) 이러한 고정관념의 층위 혹은 종류는 아주 다양해서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부터 한 국가의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어떤 스케일(?)의 고정관념이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고정관념은 일종의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고정관념이 안전장치라고?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이제 갓 결혼한 새댁이 있다. 이 새댁이 저녁 식사로 스테이크를 굽기로 했다. 그래서 늘 하던대로 스테이크용 고기를 꺼내 가위로 고기 한 쪽 귀퉁이를 둥그스름하게 잘라냈다. 그걸 본 다른 사람이 새댁에게 물었다.

"새댁, 고기 귀퉁이를 왜 잘라내는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새댁이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봤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결혼하기 전 어머니가 스테이크를 구울 때마다 늘 고기 한 귀퉁이를 둥그스름하게 잘라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그걸 따라한 것 뿐이었다. 한 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던 일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궁금해진 새댁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 스테이크 구울 때 고기 귀퉁이는 왜 잘라내? 어머니가 답했다.

"응? 내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가 늘 그랬거든. 그래서 나도 따라했는데?"

역시 예기치 않은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스테이크 고기 귀퉁이는 왜 잘라내나요? 시어머니가 대답했다.

"아.. 후라이팬이 작아서 말야, 스테이크 고기를 안잘라내면 얹을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귀퉁이를 잘라냈단다."

처음에 스테이크 고기 한 귀퉁이를 잘라낸 시어머니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뒤는? 후라이팬의 크기가 충분히 커졌음에도 이 습관이 3대를 이어 내려온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기 귀퉁이를 잘라내도 스테이크를 굽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스테이크의 일화에서 고정관념은 일종의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무슨 말인가. 할머니도, 어머니도 이렇게 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 이유야 어쨌든 나도 이 방식 그대로 따라하면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고정관념은 스테이크를 굽는 방법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사고 체계에 자리잡은 많은 고정관념은 일종의 '생존 보장 장치'로 작동해왔다. 길을 가다 호랑이를 발견하면 도망쳐라. 이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체계이자, 가장 기본적인 고정관념이다. 그 호랑이가 사육사에 의해 사람을 공격하지 않도록 사육된 호랑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호랑이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안전하다.

고정관념의 다른 종류로 업무 매뉴얼 혹은 프로세스가 있다. 매뉴얼이나 프로세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그대로만 업무를 수행하면 최소한의 결과는 보장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매뉴얼의 함정'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유정식 님의 글을 일독하길 권장한다. 클릭!) 최소한의 결과를 보장하는 것 외에 매뉴얼이나 프로세스가 주는 장점은 없을까? 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포스트에서 말하려는 주제다.

고정관념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빠른 수행'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과거에 수행한 이와 유사한 패턴의 일을 끄집어내, 그 일을 수행한 방식대로 반복할 경우 무엇보다 빨리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웹기획자가 게시판을 설계한다고 해보자. 그 기획자는 많은 웹사이트에서 게시판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고, 따라서 웹사이트의 게시판은 일정한 유형(패턴)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 패턴에 맞추어 게시판을 설계한다. 어떤 장점이 있나? 당연히, 빠르다. 더불어 안전하다. 개발자에게 혹은 디자이너에게 시간을 들여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무언가 실수할 가능성도 적다. (이런 경우 개발자에겐 한 마디면 충분하다. "게시판이에요." 그러면 개발자가 알아서 한다.)

혁신을 외치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혁신을 외친다. 과거에 해오던 뭔가를 탈피해서 새로운 걸 추구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면 무조건 좋아질거라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오랜 시간 일정한 패턴으로 지속되어 내려오던 것은 그렇게 내려오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조건 바꿔보려는 시도만큼 무모한 일도 없다. 고정관념이 고정관념이 된 것은 그것이 주는 잇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무술이나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이 '기본을 철저히 배워 익힌 다음, 그걸 잊으라'고 하는 것은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지 알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이해해야할 일종의 기본을 제공한다. 아울러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된다. 그러니 고정관념을 극복하자고 외치기 전에, 먼저 그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 세계는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할만큼 녹록하지 않다.


덧: 스테이크 이야기는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독자 사연을 기억나는대로 풀어 쓴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