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 Usability, UX에 대한 쌀로 밥짓는 얘기

웹과 모바일 2011.03.27 15:22
이 포스트를 트위터에 올렸더니 'Userbility가 아니라, Usability라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무식함이 들통나는 것은 정말 부끄럽지만, 제가 이걸 트위터에 올리지 않았다면 정정할 기회도 얻지 못했겠지요. @R_pooh님을 비롯해서 지적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몇 년전부터 부쩍 UX에 대한 얘기가 많다. UX camp라는 대표적인 행사도 있고 UX에 대한 세미나, 컨퍼런스도 많이 열린다. 명함에 UX디자이너라고 적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UX사업부, UX팀 같은 이름을 가진 부서도 있다. 내가 다니던 직장에도 이름에 UX가 들어가는 사업부가 있다. (근데 솔직히 뭐하는 덴지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이 세 가지 단어를 사용하면서 -특히 UX를 얘기하면서- 마구 뒤섞어서 얘기한다. 편리하고 쉬운, 원하는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제품이 좋은 제품인 거야 당연한데, 이런 제품을 얘기하면서 '우수한 사용자 경험의 사례'인 것처럼 말하는 식이다. 근데 그렇지 않다. 이 포스트는 스스로 하는 정리 차원에서 남긴다.

좋은 사용자 환경(UI)이 높은 사용 편의성(Usability)으로 이어지는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간결하다. 그렇다. 좋은 UI라는 얘기는 사용자의 심성 모델에 적합한, 꽤 많이 팔린 책의 제목에서도 쓴 대로 사용자를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UI라는 뜻이다. (Don't make me think.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이 버튼을 누르면 뭐가 나올까?' 사용자가 이런 고민을 하며 버튼을 누르도록 디자인하면 사용 편의성(혹은 사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그렇다면, 높은 사용 편의성(Usability)은 좋은 사용자 경험(UX)으로 이어지는가?

요 질문에 대한 답은 '꼭 그렇지는 않다'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고, 척 보면 알게끔 UI를 설계했는데, 왜 좋은 사용자 경험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은 사용성과 사용자 경험을 혼동하고 있는 거다.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가 제품,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얻은 총체적인 느낌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경험의 총합'이다. 제품을 접한 순간 얻는 시각적인 쾌감,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여기에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사용한 뒤에 느끼는 만족감, 이 모든 것들이 합쳐서서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사용자 경험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한 측면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성하는 전체 요소가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보자.
cigarette lighter
cigarette lighter by viZZZual.com 저작자 표시

crw_0348-sharp
crw_0348-sharp by sffub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여기 두 종류의 라이터가 있다. 위의 라이터는 주위에서 흔히 보는 300원자리 가스 라이터다. 아래쪽 라이터는 가스 라이터보다는 흔히 볼 수 없는, 몇 만원 쯤 하는 지포 라이터다. 가스 라이터는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아무리 골초라도 최소한 몇 년은 쓴다. 작동방법도 편리하다. 척 보는 순간, 아 저걸 이렇게 해서 요렇게 굴리면 불이 켜지겠구나, 알 수 있다. 척 보고 모른다해도 손에 잡고 몇 분만 지나면 알게 된다. 불을 켜는 목적에 이렇게 충실한 도구도 흔치 않다. 견고하고, 고장도 잘 나지 않으며, 흔하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까짓거 잃어버려도 괜찮다. 저 라이터 잃어버렸다고 자책하는 사람도 없다. 가스가 떨어지면 망설임 없이 버리면 된다.


지포 라이터는 정반대다. 불을 켜는 목적은 이룰 수 있지만 복잡하다. 그냥 칙 하고 라이터 돌을 마찰시키기만 하면 충분한 가스 라이터에 비해 뚜껑도 열어야 하고, 며칠마다 기름도 채워줘야 하고, 더 잘 쓰려면 심지도 갈아줘야 한다. 가격도 최소한 몇 만원이라 잃어버리면 아깝다. 싼 기름을 쓰면 그을음도 생기고, 기름 냄새도 난다. 아 물론 상당히 견고하기는 하다.


거의 모든 면에서 가스 라이터가 지포 라이터보다 우월하다. 그렇다면 가스 라이터가 지포 라이터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까?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가 있다. 넘어지면 웬만한 장정도 혼자서 일으켜 세우기 힘들만큼 무겁다. 더구나 비싸다. 나한테는 줘도 무용지물이다. 난 오토바이 기어 변속도 못하거든. 반면에 50cc 짜리 스쿠터도 있다. 이건 사실 자전거만 탈줄 알면 잠깐이면 배운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보는 사람도 몇 분만 익히면 동네길을 돌돌 거리며 다니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당연히 할리 데이비슨 가격의 몇 십분의 일이면 산다. 그렇다면 스쿠터가 할리 데이비슨에 비해 월등히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가?


좋은 사용자 환경이 높은 사용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반대로 높은 사용자 편의성을 제공하려면 좋은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아주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서 수많은 팬층을 보유한 제품 중 사용하기에 무지하게 불편한 제품도 많다. '우리 제품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어 아주 높은 만족감을 제공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쉽게 쓸 수 있는 것과 만족감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티백 녹차를 매일 대여섯 잔씩 마신다. 컵에 티백을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몇 분 지나서 티백을 버리고 마시면 된다. 쉽고, 편하며 저렴하다. 그러나 다른 누구는 찻잎을 우려내는 녹차를 마신다. 티백에 비해 엄청 불편하다. 근데, 티백 녹차를 마신 경험을 주위 사람에게 자랑하고 '너도 이렇게 해보라'고 권유하는 사람 본 적 있나? 티백 녹차 동호회 들어본 적 있나? 좋은 티백 녹차를 구하기 위해 발품 파는 사람 있나?


편하고 불편하고, 쉽고 어렵고가 사용자가 감동하느냐 아니냐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사실, 미비하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을 빨리 편하게 이뤄주는 제품을 만들면 그것이 좋은 사용자 경험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UX는 Usability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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