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크 - 10점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21세기북스(북이십일)

소비자의 직관, 순간의 감정을 자극하려고 애쓰는 분야의 최고봉을 꼽으로면 아마 광고가 아닐까 싶다. 특히 TV광고의 경우에는 한 순간(15초 이내)에 스쳐 지나가는 영상과 소리로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만 한다. 그러니 광고 제작자들은 온 힘을 다해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예고편은 어떨까. 영화 예고편은 오롯이 영화 속의 장면들을 편집해서 만들어낸다. 예고편 제작자는 가능한 한 영화 내에서 잠재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장면을 선정해서 짧은 시간 내에 일정한 이야기를 만들도록 편집하는 것이 최선이다. 영화에서 딱 한 번 등장하는 키스신이라도 그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지명도가 높다면 충분히 활용할만 하다는 얘기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대구에 있는 사촌과 함께 영화를 보러 중심가로 나섰다. 내가 보자고 했던 영화는 뭐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촌이 보고 싶어해서 결국 그날 보게된 영화는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너무 좋은 영화라서일까?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영화의 감독은 여러 편의 '쉣 무비'(오랜만에 나오는 딴지일보식 표현)를 만들어서 만인의 지탄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아마 지금도 이 제목을 들으면 탄식을 내뱉을 분들이 있을 듯- 바로 '스폰'이다.

이제 막 개봉을 했고, 당시 TV에서는 연일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볼 수 있었던 때였다. 화려한 CG로 무장한 장면들 가령 주인공이 불꽃과 같은 망토를 휘두르며 공중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라던가 악마와 맞서는 거대한 액션 장면들을 중심으로 내세워 '화려한 시각효과'를 강조했다. 예고편 자체로만 보면 분명 영화 전체를 잘 포장했다고 할 만한, 화려한 색감과 시각 효과가 넘쳐나는 영화임이 분명했다. 여기에 내 사촌이 깜빡 넘어간거고.

그런데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시네마 키드'를 자처하던 나는 수많은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고 그 예고편을 극장에서 확인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 영화 '스폰'의 에고편을 보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선 단 한가지 문장만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 영화, 예고편이 전부구나'

저자는 순간의 직관을 가진 전문가들을 여러 명 소개한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밝혀진 일반인들의 직관이 적중한 사례도 소개한다. 가령 테니스 선수의 서브 동작만을 보고 순간적으로 그 선수의 파울을 예측하는 테니스 코치, 단 몇 초의 음성 녹음 -그것도 단어가 정확히 들리지도 않도록 만들어진- 만을 듣고 그 사람의 소송 가능성을 예측하는 사람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강조한다. 많은 정보가 반드시 최선의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쉴 새 없이 사건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해야하는 현장에서는 순간의 직관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 정확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는 일반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주장인 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지, 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은 아니라는 것.

그와 함께 직관이 갖는 함정도 경고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코카콜라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은 펩시는 왜 결국 코카콜라를 따라잡지 못했는가. 일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혹평을 받는 제품이 왜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내는가. 요는 사람의 직관을 현혹시키는 불필요한 정보나 잘못된 선입견에 의한 판단의 착오를 반드시 배제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아름다움의 정도, 피부색, 체격 이런 것들에 대한 선입견에 현혹될 경우 최악의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내 직관을 믿는 순간이 딱 한 번 있다. 바로 취직을 위해 면접을 볼 때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 이런 것들이 뭔가 미묘하게 나에게 속삭이는 것이 있다. '이 회사는 너하고 맞지 않아.' 내 경우엔 이것이 특히 강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면 대개 그날 면접도 망치고 만다.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설명해보라는 말에도 마음 속 한 구석에 뭔가가 있어서 매끄러운 설명을 방해하고야 만다. 그러다가 이 느낌에 전혀 신경쓸 겨를이 없던 작년 초에 면접을 보고 입사한 회사는 결국 좋지 않은 결론으로 끝났다.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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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9 14:43 2008/02/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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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9 15:4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직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뻔히 보이는 사실을 왜곡할 때도 있으니까요... ^^
    • mindfree
      2008/02/19 17: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책에서도 여러가지 왜곡되는 사례에 대해 언급을 해두었습니다. 요는 직관을 행동으로 이끌어내는 것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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