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국진,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여.. 여보세요?"를 떠올린다. 내 경우엔 조금 다르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TV에서 김국진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거기서 그가 했던 너무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다.

다른 출연자가 어떤 전자제품에 대해 자랑을 한다. 세탁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세탁기라고 해보자.

"이 세탁기는 어쩌고 저쩌고 해서 아주 좋은 제품입니다"
"그럼, 그 세탁기는 밥은 잘 되요?"
"예? 아니 세탁기가 무슨 밥을..."
"밥도 못하는 세탁기가 무슨 세탁기야!"

대화 내용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저런 식이다.

2.
나는 한 제품에 여러 기능을 집어넣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80만원이 넘는 핸드폰이 수두룩한 시대에 살지만, 도대체 핸드폰을 80만원을 주고 구입하는 이유를 나로선 알 수가 없다. 핸드폰에 몇 백만 화소 카메라가 들었다는 게 왜 장점이 될까? 몇 백만 화소 카메라가 필요하면 카메라를 사면 된다. 두 개를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고? 어차피 볼에 바람 집어넣고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서 셀카 찍는 분들은 가방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다니잖아.

오로지 카메라 기능만 되는 카메라는 전화도 되는 카메라보다 훨씬 저렴하다. 핸드폰과 카메라를 따로 사면 남는 돈으로 친구들에게 삼겹살 쏠 돈도 남을 거다.

"여러 기능을 결합한 제품은 무조건 싫어하나?"

그렇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제품과 제품을 결합한 것들이다. 제품에 서비스를 결합하는 것은 대단히 좋아한다. 가령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게 하면 외근이 잦은 직장인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런데 핸드폰에 카메라를 결합하면 누구에게 유용하게 쓰이게 되는 건가?

얼마전에 아아팟 터치를 샀다. 알다시피 아이팟 터치는 웹 브라우저도 내장하고 있고, 동영상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튠즈에서 음악도 살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팟 특유의 '단순함'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 '사용설명서가 필요한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팟 터치도 사용설명서가 없다. 버튼도 딱 두 개 뿐이다.

어른들이 젊은이들보다 전자 제품 사용법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용설명서를 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이들은 사용설명서를 보지 않는다. 이것 저것 해보다 실수를 하면 다른 방법으로 해본다. 어른들은 사용설명서를 보고 최대한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다. 실수한다고 해도 그 제품이 망가지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실수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지만 사용설명서라는 놈은 원래 목적이 '제품 기능을 익히다 질려서 기능을 안쓰도록 포기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수십 가지 기능을 갖춘 VCR을 사서는 재생 기능만 쓴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핸드폰은 모토롤라의 스타텍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0년 넘게 핸드폰을 쓰면서 한 번도 스타텍을 써본 적이 없다.

스타텍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단순함 때문이다. 부가 기능들을 깔끔하게 들어낸 단순함. 이는 미국인들의 품질에 대한 기본 코드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컬쳐 코드'라는 책에서 품질에 대한 미국인의 정서는 '작동함(It works)'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인은 완벽한 품질을 바라지 않으며, 기본 기능이 작동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이 포스트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핸드폰 사용 10년 만에 드디어 스타텍 구입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아직 확인 전화도 안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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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4 19:00 2008/05/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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